안전등관리원

갱내 작업원들의 휴대용 조명기구인 안전등을 보수·유지·관리한다.

안전등관리원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안전등관리원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안전등수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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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업무

수행 직무

  • 갱내 작업원들이 입갱할 때 안전등을 대출하고 퇴갱 시 반납받는다.
  • 안전등의 대출 및 반납사항을 관리일지에 기록한다.
  • 안전등을 충전시키고 충전상태를 확인한다.
  • 고장난 안전등을 테스터를 이용하여 검사하고 고장원인을 파악한다.
  • 약품을 혼합하고 비중계로 비중을 측정하여 축전지액을 조제한다.
  • 비중액을 축전지에 주입한다.
  • 낡은 전구 및 단선이나 단락된 코드를 교체한다.

작업강도

가벼운 작업

작업장소

실내

커리어 전망

대한석탄공사 소속 광업소는 2023년 화순광업소, 2024년 장성광업소에 이어 도계광업소까지 순차로 문을 닫을 예정이어서, 안전등관리원처럼 갱내 작업을 직접 지원하던 직무의 국내 수요는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1] 다만 폐광 이후에도 갱내수 배수를 위한 펌프 등 안전 관련 시설은 계속 유지·관리해야 해서, 폐광 이후의 안전 관리 수요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도 확인된다.[2] 광산안전사무소는 광산이 문을 닫는 과정에서도 안전검사와 시정지시·안전명령 등 사후 관리 체계를 유지하고 있어, 소수 인력이 잔존 광산·폐광 시설의 안전을 계속 점검하는 역할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3]

워라밸 & 사회적 평가

워라밸

안전등관리원은 광산안전법에 따른 안전검사 체계 아래서 근무하는데,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경미한 사항은 시정지시로, 법 위반은 안전명령으로 처리되며 미이행 시 입건·송치까지 이어질 수 있어 관리 업무에 상당한 책임이 따른다.[4] 광산안전사무소 같은 감독기관은 사고 발생 시 구호 명령이나 안전관리 직원의 선임·해임 신고 수리 같은 인사 업무도 함께 담당해, 안전등관리원의 채용·교체 과정도 이 감독 체계의 영향을 받는다.[5] 태백석탄박물관이 광산 근로자들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세워졌을 만큼, 갱내 지원 업무는 위험한 작업 환경 속에서 이뤄지는 저평가된 노동으로 여겨져 왔다.[6]

사회적 기여

안전등관리원은 갱내로 들어가고 나오는 광부들과 매일 직접 대면하며 안전등을 대출·반납받고 관리일지를 기록하는 만큼, 현장 광부들과의 신뢰가 중요한 직무다. 서부광산안전사무소가 서울·인천·대전·경기·충남 5개 지역을 나눠 관할하는 것처럼, 광산 현장은 감독기관·광업소·현장 근로자 간의 보고 체계가 명확히 나뉘어 있어 안전등관리원도 이 체계 안에서 소통한다.[7] 1980년 사북항쟁 당시 광부들이 임금 책정 방식과 사내 감시 조직에 반발했던 사례처럼, 과거 광산 현장은 노사 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갈등이 격화된 역사도 있다.[8] 이 사건은 이후 노동운동의 출발점으로 평가될 만큼 광산 노동 현장의 소통 구조에 오래 영향을 남겼다.[9]

여담

  • 안전등은 갱내 작업원들이 캄캄한 갱도에서 시야를 확보하고 위험을 감지하는 데 쓰던 필수 장비로, 국내 탄광 문화유산을 기록하는 '사라져 가는 기억, 한국의 탄광' 아카이브에서도 별도 이야기로 다뤄질 만큼 광부들에게 상징적인 도구였다.[10] 문경 은성갱도는 1963년 뚫려 1994년 폐광 때까지 운영된 실제 갱도로, 깊이 약 800m·총 길이 400km에 이르는 규모에서 연간 30만 톤 이상의 석탄을 캐냈는데, 지금은 갱내사무실·채탄막장과 함께 가스 검사 장면을 재현한 전시가 있어 안전 관리 업무의 실제 모습을 보여준다.[11] 1980년 정선 동원탄좌에서 벌어진 사북항쟁은 채굴량을 낮게 계산해 임금을 깎던 관행과 사내 암행독찰대의 감시에 맞선 광부들의 저항이었는데, 갱내 안전과 노동환경 개선 요구가 얽혀 있던 사건으로 꼽힌다.[12] 이 사건은 경찰과 광부 양측에 사상자를 낸 유혈 충돌로 번졌고, 이후 1980년대 노동운동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평가된다.[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