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제조원

원단절단기, 재단용 칼 등을 사용하여 원단을 재단하고 수술, 매듭, 염주 등을 부착하여 부채를 제조한다.

부채제조원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부채제조원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접부채제조원합죽선제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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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업무

수행 직무

  • 일반부채나 접부채를 만들기 위하여 면이나 실크, 종이 등의 원단을 원단절단기나 재단용 칼을 사용하여 부채꼴 모양으로 재단한다.
  • 대나무를 제작할 부채 치수에 따라 기계나 칼로 절단하고 폭을 가늘게 다듬는다.
  • 부채꼴로 재단한 원단 위에 접착제를 칠하고 제조된 부챗살을 일정 간격으로 배열하여 붙인다.
  • 속살이 모아진 끝부분에 살이 떨어짐과 포개짐을 방지하기 위하여 조개지를 붙여 고정한다.
  • 이 반제품을 압착기로 압착한 후에 건조기에 건조하거나 자연건조를 한다.
  • 부채 손잡이에 수술이나 매듭, 염주 등의 장식용 끈을 달고 상표를 부착한다.
  • 접부채를 제조할 경우에는 재단한 부채꼴 원단을 손으로 접어서 주름을 만드는 일을 하기도 한다.
  • 완성된 부채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한다.

작업강도

보통 작업

작업장소

실내

육체활동

손사용

커리어 전망

국립무형유산원 소개에 따르면 전통 부채 제작 기술을 이어가는 장인 수 자체가 많지 않아, 이 분야는 대량 생산 시장보다 전통 공예·문화유산 보존 영역에서 수요가 유지되는 특성을 보인다.[1] 국가무형유산 선자장 김동식의 아들 김대성은 기술을 전수받고 있지만, 낮은 수요와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제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혀, 부채 제조 기능을 이어갈 인력 자체가 갈수록 희소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2] 반면 전통 한지 대신 모시·본견·유칼립투스 같은 다양한 섬유를 활용해 부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젊은 공예가들도 나타나고 있어, 공예대전 입상을 발판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사례도 있다.[3] 전주가 부채 명산지로 자리잡아온 역사적 배경은 이 직업이 관광·공예 산업과 맞물려 명맥을 이어가는 기반이 되고 있다.[4]

워라밸 & 사회적 평가

워라밸

부채 제조는 대부분 소규모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이뤄지며, 대나무를 물에 불리고 얇게 깎아 붙이는 등 정교한 손끝 작업이 반복돼 장시간 집중력이 필요한 근무 환경이다.[5] 국립무형유산원도 전통 부채 제작이 오랜 수련을 요구하는 일임을 소개하고 있어, 숙련도에 이르기까지 도제식 훈련 기간이 긴 편이다.[6] 부채 한 자루를 완성하는 데 최소 보름에서 3개월 가까이 걸리는 만큼, 대량 생산 공장과 달리 소량 다품종을 다루는 공방 특유의 작업 리듬을 따른다.[7]

사회적 기여

국립무형유산원 등 공공기관이 부채 장인의 이야기를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 만큼, 부채제조원은 단순 생산직이 아니라 전통 문화를 지키는 장인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8] 선자장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돼 있다는 점도 이 직업이 전통 공예 계승자로서 사회적 존중을 받는 배경이 된다.[9] 다만 도제식 전승 구조와 낮은 수요 탓에 신규 인력 유입이 제한적이어서, 전통과 현대적 수요 사이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인식도 함께 존재한다.[10]

여담

  • 합죽선은 초조방·정련방·낙죽방·광방·도배방·사복방까지 6개 공방이 분업으로 협력해 완성하는 고급 부채로, 조선 후기 정조 18년(1794) 문헌에 처음 등장할 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11] 합죽선 하나를 완성하려면 100번이 넘는 손길과 옻칠·대모 처리 등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하며, 일제강점기 이후 변형된 기법과 재료를 연구해 전통 방식을 되살린 장인들이 지금도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다.[12] 부채는 크게 둥근 모양의 방구부채(단선)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부채로 나뉘며, 태극선·파초선·공작선 같은 방구부채와 백선·유선 같은 접부채 등 종류가 다양하다.[13] 조선시대 전주감영에는 임금에게 바칠 부채를 만들어 관리하는 선자청이 따로 설치돼 있었을 만큼, 전주는 오래전부터 부채 산지로 이름났다.[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