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모발직조원

정모된 모발을 엮어 짜기 위해 모발직기를 이용해 쌍침·단침작업을 한다.

가발모발직조원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가발모발직조원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가발 봉제맞춤가발 제조모발직기가발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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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업무

수행 직무

  • 정모공정에서 정모 완성된 원사를 규격서의 지시대로 모발직기에 투입한다.
  • 쌍침재봉(2행으로 펼쳐 2중 미싱 바늘로 봉제)틀을 사용하여 정모된 모발을 두 줄로 엮어 짠다.
  • 쌍침재봉된 모발의 중앙부분을 집어 단침재봉(2행으로 펼쳐진 머리를 다시 미싱선을 중심으로 한쪽 방향으로 접어서 봉제)틀로 재봉한다.
  • 모발이 빠지지 않도록 뿌리부분을 접어서 재봉틀로 박아주고 접착제를 바른다.
  • 가위를 사용하여 규정된 모발을 자른다.
  • 저울로 무게를 측정한다.

작업강도

보통 작업

작업장소

실내

육체활동

손사용, 시각

커리어 전망

가발 산업은 1970년대 효자 수출산업에서 사양산업으로 전환됐으나, 항암환자·탈모 인구를 위한 의료용 영역은 꾸준한 수요를 보인다 .[1] 가발 수출은 50년 전 효자 산업의 그늘에서 의료용·맞춤형 영역으로 재편되며 일정 수준 시장을 유지한다 .[2] 하이모는 2001년 업계 최초 3D 두상 스캐너를 독자 개발하고 전국 62~70개 직영점·미국·일본 수출망을 갖춰 사양산업을 프리미엄 맞춤가발 시장으로 재편했다 .[3] 홍인표 회장은 사양산업이던 가발을 R&D 투자와 차별화 전략으로 성장산업으로 전환한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4]

워라밸 & 사회적 평가

워라밸

모발직조 작업은 실내 좌식 환경에서 모발직기·미싱·접착제 등을 다루는 정밀 수작업으로, 쌍침·단침 재봉을 반복하는 특성상 어깨·손목 근골격계 부담이 누적된다 .[5] 1970년대 구로공단의 가발공장은 하루 12시간 교대·기숙사 생활 등 노동강도가 극심했으나 현재는 근로기준법 적용과 기계 자동화로 작업 시간이 단축됐다 .[6]

사회적 기여

한국 가발 산업은 1960~70년대 외화 획득의 핵심 효자 산업으로 1970년 전체 수출의 약 10%를 책임지며 국가 산업화에 기여했다 .[7] 현재는 항암 치료로 인한 탈모 환자와 소아 백혈병 환자의 의료용 가발 영역이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 국립암센터 암환자의료비지원사업은 소아 백혈병 환자에 연 최대 3,000만 원까지 가발 구입비를 지원한다 .[8] 보건복지부는 성인 의료급여수급권자에 대해 연 최대 300만 원 의료비를 지원하며 가발 구입비도 포함된다 .[9]

관련 영상

여담

  • 한국 가발 산업은 1960년대 미국 시장 진출을 시작으로 1970년에는 전체 수출의 약 10%를 차지하는 효자산업으로 성장했다 .[10] 1964년 9월 14일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 제정으로 출범한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가 가발·다람쥐 등 노동집약 품목 수출의 중심지였으며, 가발은 한국 첫 100억 달러 수출(1977년) 달성의 주역 중 하나였다 .[11] 당시 구로공단의 가발공장에서는 20대 여공 다수가 하루 12시간 미싱·봉제 작업을 수행했으며, 1979년 YH무역 여성노동자 김경숙 사망 사건이 박정희 정권 종식의 한 계기가 됐다 .[12] 사양길에 접어든 산업을 1987년 설립된 하이모가 맞춤가발·3D 두상 스캐너로 재편하며 사양산업을 성장산업으로 전환했다 .[13] 한국 정부의 수출주도공업화 정책 하에 가발은 1960~70년대 면직물과 함께 한국 경공업 수출의 한 축을 담당했다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