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전구베이스조립원

봉합과 배기가 완료된 유리구의 하부에 접착제가 주입된 금속베이스를 부착하는 캡핑공정 기계를 조작한다.

유리전구베이스조립원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유리전구베이스조립원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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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업무

수행 직무

  • 전 공정에서 접착제가 도포된 베이스를 기계의 베이스 공급대에 놓는다.
  • 가스버너를 점화시켜 불꽃의 온도와 길이를 조절한다.
  • 기계를 가동시켜서 베이스와 유리구의 하부가 결합되도록 하고, 가스불꽃에 의해 베이스에 도포된 접착제를 녹여서 유리구와 베이스가 접착되도록 캡핑공정을 한다.
  • 접착된 유리전구의 베이스에 인출되어 있는 도입선을 절단하고 베이스의 하부와 측면의 접합부를 손이나 기계로 납땜한다.
  • 완성된 유리전구의 외관, 치수, 소성온도 등을 검사하고 이상이 발견되면 수동공구를 사용해서 조정한다.

작업강도

보통 작업

작업장소

실내

육체활동

손사용

커리어 전망

국내에서는 2008년 발표된 퇴출 계획에 따라 2014년 1월부터 백열전구의 생산과 수입이 전면 금지되면서, 유리구와 금속베이스를 결합하는 캡핑 공정 자체의 국내 생산 물량이 크게 줄었다.[1] 정부가 안정기내장형램프·LED램프 등 고효율 광원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면서 관련 상장 조명업체 주가가 동반 상승하는 등 산업 구조가 백열전구 생산에서 LED 부품 조립으로 빠르게 재편됐다.[2] 필룩스 같은 조명기업들은 단순 백열전구 생산 대신 색온도를 조절하는 인공태양 조명기술 등 고부가가치 광원 개발로 방향을 틀었다.[3] 1887년 경복궁에 처음 들어온 백열전구가 2014년부터 국내 생산·수입이 전면 중단되면서, 전통적인 베이스 조립 공정의 일자리는 앞으로도 계속 축소될 전망이다.[4]

워라밸 & 사회적 평가

워라밸

국내 백열전구 생산업체는 2014년 생산·수입 금지 직전 기준으로 단 1곳까지 줄어, 베이스 조립 공정 근무자 수 자체가 매우 적은 소규모 사업장 중심으로 운영된다.[5] 작업은 실내 조립라인에서 이뤄지고 강도는 보통 수준이지만, 가스버너 불꽃 온도를 손으로 직접 조절하며 반복적으로 캡핑·납땜을 수행해야 하므로 장시간 앉거나 서서 집중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조합원사 다수가 안정기내장형램프·LED 등 신광원 생산으로 전환하면서 근무 형태도 조명기구 조립 전반으로 넓어지는 추세다.[6]

사회적 기여

백열전구는 1887년 경복궁 전기등소에서 처음 점등된 이래 한국 전기화의 상징으로 꼽혀 왔으며, 그 발전소 터는 최근 발굴조사로 위치가 확인될 만큼 근대사적 의미를 인정받고 있다.[7] 1887년 3월 6일 저녁 건청궁에 처음 불이 켜졌을 때 사람들이 생전 처음 보는 밝기에 탄성을 질렀다는 기록이 전해질 만큼 당시로선 획기적인 사건이었다.[8] 그러나 저효율 조명이라는 한계로 2014년부터 국내 생산·수입이 전면 금지되면서, 이제는 극소수 소규모 사업장에서만 명맥이 이어지는 사양 공정으로 여겨진다.[9]

여담

  • 한국 최초의 전등은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서 켜졌으며, 발굴조사로 당시 발전소 '전기등소' 터가 확인됐다.[10]

  • 도입 초기 백열등은 자주 꺼지고 유지비가 많이 든다고 하여 '건달불(乾達火)'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11]

  • 에디슨이 1879년 발명한 백열전구는 전기에너지의 95%를 열로 낭비하는 저효율 조명이라는 이유로, 한국 도입 127년 만인 2014년 국내 생산·수입이 전면 금지됐다.[12]

  • 필라멘트 재료로 텅스텐이 쓰이는 것은 녹는점이 3,422℃로 모든 원소 중 가장 높아 고온에서도 잘 견디기 때문이다.[13]

  • 2014년 생산·수입 금지 당시 국내에서 백열전구를 생산하던 기업은 단 1곳에 불과했다.[14]

  • 요즘 국내에 유통되는 백열등기구는 대부분 국내 인증만 받은 해외 생산 제품으로, KC 인증 목록에는 중국 조명업체 브랜드도 다수 등록돼 있다.[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