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발굴원

매장되어 있는 유적이나 유물에 대해 발굴·조사하고 발굴유물을 연구한다.

유적발굴원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유적발굴원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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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업무

수행 직무

  • 역사자료, 문헌 등을 연구·분석하여 유적지의 위치 및 지역을 확인한다.
  • 현장의 지표조사를 실시한다.
  • 고고학, 역사학, 지질학, 민속학, 고생물학자 등과 협의하여 발굴방법 및 절차 등을 결정한다.
  • 현장을 답사하여 매장유산이 분포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대상으로 선별적인 시굴조사를 실시한다.
  • 발굴순서를 논의한다.
  • 삽, 곡괭이, 긁는 기구, 먼지 터는 기구 등을 사용하여 매장유산을 발굴한다.
  • 도자기, 장신구 등의 유물이 발견되면 발굴위치, 수량, 종류 등을 정리하여 기록하고 사진을 촬영한다.
  • 발굴조사가 완료되면 발굴조사보고서를 간행하여 최신정보를 학계에 소개하기도 한다.
  • 그 외에 연구원(일반)이 수행하는 일반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작업강도

아주 가벼운 작업

작업장소

실내

커리어 전망

전국 곳곳에서 개발사업이 이어지는 만큼, 공사 전 지표조사·시굴조사를 의무화한 제도 아래 매장유산 조사 수요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여러 조사기관이 동시에 여러 지역의 발굴 현장을 운영할 정도로 현장 물량이 이어지고 있다.[1] 서울 중림동 재개발 현장처럼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도 유적이 나와 공사가 멈추고 정밀발굴조사에 들어가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 개발 수요가 있는 한 조사 인력에 대한 수요도 함께 유지될 전망이다.[2] 하남 교산 신도시처럼 개발 면적의 절반 이상이 매장유산 구역으로 묶인 대형 사업지도 있어, 조사 범위와 기간을 둘러싼 학계와 개발 주체 간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3] 기장읍성처럼 발굴 성과가 쌓여 국가사적 승격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어, 조사 결과가 유적의 보존 등급 자체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4]

워라밸 & 사회적 평가

워라밸

유적발굴원은 여러 지역의 발굴 현장을 오가며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 한 조사기관이 동시에 여러 현장을 운영하기도 한다. 발굴은 날씨와 현장 여건에 좌우되는 야외 작업이라 계절과 공정에 따라 근무 강도 차이가 크고, 조사 마감 일정에 맞춰 근무시간이 늘어나기도 한다.[5]

사회적 기여

유적발굴원의 조사는 개발로 인한 매장유산 훼손을 막고 역사 기록을 보완하는 공익적 역할을 한다. 소규모 공사에 국비를 지원해 발굴비용 부담을 낮추는 제도도, 이런 공익적 조사가 개인의 과도한 부담 없이 이뤄지도록 뒷받침한다.[6]

여담

  • 경주 월성은 1979년부터 본격 발굴이 시작돼 지금도 조사가 이어지는데, 성벽 축조 연대가 기존 기록보다 약 250년 앞선 4세기 중엽이라는 사실과 함께 국내 최초로 성벽 축조 과정의 인신공희 흔적이 확인됐다.[7]

  • 1971년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도굴 피해 없이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어, 지석 2매 덕분에 무덤 주인의 신원까지 확인할 수 있었던 드문 사례다.[8]

  •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2009년 해체 조사 중 금제사리봉안기를 포함한 유물 500여 점이 나와, 639년 창건 기록이 그대로 확인됐다.[9]

  •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는 발굴을 거듭할수록 유물이 쌓여 지금까지 3만여 점이 나왔는데, 그중에는 수세식 변기시설과 길이 5.9m짜리 목선까지 포함돼 있다.[10]

  • 천마총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진 천마도와 함께 금관 등 국보급 유물 1만1500여 점이 한꺼번에 출토됐다.[11]

  • 경남 고성 만림산 토성 발굴에서는 한 주거지에서 철겸·철부·화살촉이 함께 나왔는데, 농기구와 무기가 한 곳에서 동시에 출토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로 꼽힌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