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장사 및 양복사

양장사 및 양복사는 고객의 요구에 따라 여러 디자인의 의복을 제작합니다.

양장사 및 양복사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양장사 및 양복사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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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업무

수행 직무

  • ▶ 양장사 및 양복사는 고객의 요구에 따라 여러 디자인의 의복을 제작한다.
  • ▶ 천의 종류, 색상 및 스타일을 상의한 후 고객의 치수를 재고 기록한다.
  • ▶ 고객의 치수대로 본을 제조하여 패턴 모형을 제작한다.
  • ▶ 원단 위에 패턴 모형을 올려놓고 재단하여 시침질로 바느질하거나 재봉틀로 의복의 부분들을 접합한다.
  • ▶ 고객에게 가봉하여 치수 및 디자인을 점검하고 수정하여 의복을 완성한다.

커리어 전망

한국 패션시장 규모는 2023년 48조 4,167억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3년 연속 줄어 2026년에는 44조 4,955억 원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그 안에서도 남성정장 시장만은 2024년 4조 7,792억 원에서 2026년 4조 9,000억 원으로 2년 연속 소폭 성장이 예상된다.[1] 반면 남성 캐릭터 캐주얼 시장은 6~7년 전보다 약 70% 수준으로 쪼그라들어, 같은 남성복 안에서도 품목별 온도차가 크다.[2] 2010년대 후반부터 기성복 업계가 MTM(맞춤 생산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맞춤과 기성복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3] 맞춤양복점은 마진율을 낮추고 판매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손님을 늘린 사례도 있어, 가격 구조 혁신이 생존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4]

한국의 직업지표

창의성 63.8%
대인관계 42.1%
사회공헌 41.8%
일가정균형 31.1%
융합성 28.1%
고용유지 27.6%
소득수준 18.2%
[자료 : 한국직업정보연구원, 맞춤형취업지원을 위한 직업지표 연구(2020~22)]

학력·전공 분포

학력 분포

중학교 이하
13%
고등학교
57%
전문대
20%
대학
10%

워라밸 & 사회적 평가

워라밸 지수

보통 이하

사회적 기여도

보통 이상

워라밸

외국산 고급 원단을 쓰고도 마진율을 10~13%로 낮춘 양복점처럼, 박리다매 전략으로 손님을 늘려 수입을 유지하려면 그만큼 많은 물량을 소화해야 해 노동 강도가 높다.[5] 1916년 창업한 종로양복점처럼 3대째 가업을 잇는 경우 후계자가 오랜 기간 밑에서부터 기술을 새로 배워야 해 숙련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6]

사회적 기여

1916년 창업한 종로양복점처럼 3대에 걸쳐 가업을 잇는 노포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으로 조명받는 등, 오래된 양복점은 지역 상권의 역사적 자산으로도 평가된다.[7] 다만 한국 패션시장 규모가 3년 연속 줄어드는 흐름 속에서 맞춤복 수요 기반도 함께 영향을 받는다.[8]

적성 및 흥미

직업 만족도

62.5% 좋음

※ 직업만족도는 해당 직업의 일자리 증가 가능성, 발전가능성 및 고용안정에 대해 재직자가 느끼는 생각을 종합하여 100점 만점으로 환산한 값입니다.

적성

양장사 및 양복사는 옷을 만들기 위해 기본적인 손재능이 필요합니다

흥미

  • 문화적 현상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에게 적합합니다
  • 예술적 형태를 창조해 내는 신체적 활동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적합합니다

임금 정보

평균 3,108만원

여담

  • •

    57년간 남성 정장을 만들어온 이정구 명장은 1970년 일본 국제기능대회 양복 직종에서 금메달을 땄고 2001년 '대한민국양복명장'으로 선정됐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재도 그에게 정장 제작을 맡겼다.[9]

  • •

    1916년 종로에서 문을 연 종로양복점은 지금 을지로 3가에서 3대째 이경주 대표가 가업을 잇고 있다.[10]

  • •

    1967년 한국이 처음 출전한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양복과 제화 직종이 나란히 금메달을 땄다.[11]

  • •

    전국기능경기대회는 연 1회 열리며 모바일로보틱스 등 53개 직종에 약 1,800명이 참가해 직종별 1위에게 1,000만 원의 상금과 대통령상·국무총리상 수상 기회를 준다.[12]

  • •

    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격년으로 열리며 참가 직종이 46개에 이른다.[13]

  • •

    1920년대 후반 양복상 정자옥이 "양복은 필히 기성복에 한한다"고 선언하며 맞춤 중심이던 한국 양복업에 기성복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