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업무
수행 직무
- ▶ 고객의 발 모양을 측정하고 라스트(구두형)를 기반으로 패턴을 제작한 뒤, 가죽 재단(스카이빙)·제갑·조립·창 부착·마감의 72여 개 공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 ▶ 완성까지 8~14일이 소요되며, 비브람 밑창 접착·굽 조립 등 각 단계에서 20년 이상의 경험이 요구되는 숙련 기술이 집약된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치수를 재고 가죽을 재단하여 구두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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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수동에는 수제화 생산 업체 300여 곳을 포함해 500여 개 신발 관련 사업체가 밀집해 있으며, 한국 수제화의 70% 이상을 생산하는 핵심 산업지구이다 .[1] 부산을 중심으로 한 신발 산업 R&D 투자 확대와 명품 신발 수요 증가로 국내 수제화 시장은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전환 중이다 .[2]
성수동 제화공들은 시즌 성수기에 하루 16~18시간 작업하는 경우가 많으며, 반복적인 재봉·망치 작업으로 인해 손가락 변형이나 류머티즘 질환을 앓는 장인이 많다 .[3] 구두제화원의 급여는 일감당 5,500원 수준으로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소사장제' 고용 구조로 4대 보험과 퇴직금 혜택을 받기 어렵다 .[4]
구두제화원은 국가가 지정한 '우수 숙련기술인'으로 인증받거나 서울시 발전기금 지원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장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장인 정신으로 기술을 이어간다 .[5] 전태수 명장처럼 39년 경력의 제화원이 국내외 최고위층 인사의 신발을 제작하는 등, 최고 수준의 기술자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다 .[6]
성수동 수제화 명장 유홍식은 12세부터 구두를 만들기 시작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신발을 제작한 한국 제1호 수제화 명장이다 .[7] 성수동 수제화 거리는 1925년 여의천교 인근에서 미군 전투화 수선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80년대 최전성기에는 천여 개 공장이 운영되었다 .[8] 한국에서 구두 문화는 1880년대 개화파 정객들이 서양식 구두를 들여오면서 시작되어, 1905년 서울에 최초의 양화점이 문을 열었다 .[9] 화혜장(花鞋匠)은 한국 전통 신발 제작 장인의 기술로, 72개 이상의 수작업 공정을 거쳐 신발을 완성하는 무형문화재이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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