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석공

건축물의 미관·견고성을 높이는 일은 화강암·대리석 같은 건축용 석재를 재단하고 절단·가공한 후 일정한 형태로 쌓거나 설치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건축석공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건축석공 직업 종사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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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상세 정보 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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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업무

수행 직무

  • ▶ 지정된 번호와 위치에 맞고 크기·형태·색상 조건도 충족하는 가공된 돌을 고른다.
  • ▶ 공법을 기준으로 모르타르를 시공면에 바르는 방식과 제작된 앵글을 조립하는 방식 중 하나를 따른다.
  • ▶ 가공 석재는 인양장비나 손을 써서 들어 올린다. 이후 앵글에 고정하거나 모르타르면 위에 붙인다.
  • ▶ 망치로 두들기는 방식으로 석재 표면을 고르게 만든다.
  • ▶ 흙손으로 모르타르 또는 치장용재를 떠서 돌의 연결 부분을 메운다.
  • ▶ 수평기·측연추 등을 사용하여 무늬와 형태, 석재의 정위치 상태를 확인한다.
  • ▶ 석재 시공이 편하도록 수공구나 전동공구를 택해 재단·절단·가공하기도 한다.

작업강도

힘든 작업

작업장소

실내·외

육체활동

손사용

커리어 전망

향후 5년간 건축석공 고용은 다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건설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숙련된 전문 인력은 꾸준히 수요가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하는 한국직업전망은 건설 관련직을 포함한 7개 분야 직업의 10년 단위 고용 전망을 다루고 있다.[1]

재직자가 생각하는 일자리 전망

<조사년도: 2023년>

※ 위의 그래프는 직업당 평균 30명의 재직자가 해당 직업의 향후 5년간 일자리 변화에 대해 응답한 결과입니다. 작업전문가와 재직자들의 입장과 견해에 따라 일자리 전망에 차이가 있으므로, 참고자료로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학력·전공 분포

학력 분포

중학교 이하
3%
고등학교
87%
전문대
10%
대학
0%
석사 이상
0%
박사
0%

전공 분포

공학계열
100%
인문계열
0%
사회계열
0%
교육계열
0%
자연계열
0%
의약계열
0%
예체능
0%

워라밸 & 사회적 평가

워라밸 지수

보통 이하

사회적 기여도

보통

워라밸

건설 현장 특성상 혹서·혹한기 외부 작업이 불가피하다. 석재 특성상 무거운 자재를 다루는 신체적 부담이 크며, 날씨에 따른 작업 중단이 잦아 연간 실근무일이 불규칙하다. 분진이 발생하는 작업에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따른 보호구 착용 등 조치가 요구된다.[2]

사회적 기여

건축물의 미관과 내구성을 결정하는 핵심 공정을 담당한다. 특히 문화재 복원·보수 분야에서는 전통 기술의 계승자로서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며, 국가유산청은 이러한 전통 석조 기법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3]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는 석조문화유산을 포함한 국가지정 문화유산의 보존처리를 전담해 석공의 전통 기술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4]

적성 및 흥미

직업 만족도

62.1% 좋음

※ 직업만족도는 해당 직업의 일자리 증가 가능성, 발전가능성 및 고용안정에 대해 재직자가 느끼는 생각을 종합하여 100점 만점으로 환산한 값입니다.

임금 정보

하위 25% 3,475만원
평균 50% 3,700만원
상위 25% 4,200만원

※ 조사년도: 2023년

※ 위의 임금정보는 직업당 평균 30명의 재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로, 재직자의 자기보고에 근거한 통계치입니다. 재직자의 경력, 근무업체의 규모 등에 따라 실제 임금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직업간 비교를 위한 참고 자료로만 활용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여담

  • •

    국가무형유산 석장(石匠) 보유자 이재순은 1977년 국제기능올림픽 석공 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뒤 스승 밑에서 약 10년간 수련하며 전통 석조각의 길을 걸었다.[5]

  • •

    국가유산청은 전통 석조물 제작 기법을 계승하기 위해 2007년 석장 분야를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했다.[6]

  • •

    2013년 숭례문 복구 당시에도 이재순·이의상 두 석장이 각 분야 최고 장인으로 참여해 전통 방식대로 석재를 다듬었다.[7]